유대인들이 질문하였다.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때문이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한 적이 없다.
아브라함이 자신을 보았다고 하였다.
아브라함은 모리아 산에서 이삭을 드릴 때 여호와께서 준비해 놓으신 양을 보았다.
그때 아브라함은 여호와를 여호와 이레라고 불렀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놓으셨다는 뜻이다.
아브라함은 그 양에서 예수님을 보았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아들 이삭에서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다.
아브라함에 산을 올라갈 때 산 반대쪽에서는 양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때도 미리 준비하셨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보지 못했기 때문에 여호와를 여호와 이레라고 부르지 않았다.
아브라함은 단순히 양을 보지 않았고 양에서 예수님과 인류의 구원을 보았기에 여호와 이레를 불렀다.
이레는 히브리어 야레에서 왔다.
야레는 ‘보다’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이미 보고 계신다.
그렇기에 나도 봐야한다.
내가 같이 볼 때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가 되신다.
아브라함은 동일한 하나님을 다른 이름으로 불렀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같은 것을 볼 때 하나님의 감추어진 이름을 알았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 말씀이 나를 본다.
우리가 말씀을 볼 때 내가 말씀이 보는 것을 본다.
내가 ‘야레’함으로 여호와 이레를 누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