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역사관은 처음이 있으면 끝이 있다.
창조 – 문제 – 해결 – 재시작
우리는 지금 해결의 역사에서 살고 있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새하늘과 새땅이 열려 모든 것이 다시 새롭게 시작된다.
구약은 오실 메시야
복음서는 오신 메시야
서신서와 계시록은 다시 오실 메시야를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전체를 이렇게 요약하셨다.
누가복음 22장
44.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49. 볼지어다 내가 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이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될 것은 성경에 기록되었다.
누군가는 선교가 불가능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성경은 선교가 가능하다고 말하는 수준을 넘어 이미 그 일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선교에 대한 인식은 안된다. 어렵다. 힘들다에서
된다. 이것은 되도록 결정된 일이다. 로 바뀌어야 한다.
성경에서는 항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 전파되는 일과 세상의 끝이 연결되어 나타난다.
기도를 많이 해야 오시는 것이 아니다.
금식을 해야 주님이 오시는 것이 아니다.
봉사와 구제를 해도 주님은 오시지 않는다.
내 형제를 사랑해도 주님은 오시지 않는다.
심지어 내 주변 사람만 전도하는 것이 주님을 오시게 하지 않는다.
오직 선교만이
오직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오직 미전도 종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만이
주님을 다시 오시게 하는 길이다.
이 선교가 이미 될 것이 결정되어 있다면
우리는 왜 선교를 해야 되는가?
어차피 되는 일이라면 굳이 해야 하는가?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때를 물으실 때마다 항상 모든 족속을 이야기 하셨다.
특정한 때가 있지 않고 특정한 조건이 있다는 것이다.
주님이 하루라도 빨리 오실려면 하루라도 빨리 선교를 해야 하는 것이다.
왜 주님이 빨리 오셔야 하는가?
이 세상을 컨베이어 벨트로 비유해 보자
모든 민족은 하나의 컨베이어 벨트이다.
세상에는 2만 4천여개의 컨베이어 벨트가 존재한다.
인간은 계속 태어나며 계속 지옥으로 간다.
전도를 함으로 그 컨베이어 벨트에서 어느 정도 빼올 수 있지만
그래도 인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지옥에 가는 인간은 더더욱 많아지고 있다.
역사상 단 한 번도 전도의 속도가 인구 증가의 속도를 따라잡은 적이 없다.
이 비극을 끝내려면 컨베이어 벨트에서 더 빨리 빼오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의도적으로 다른 컨베이어 벨트로 넘어가
모든 컨베이어 벨트에 복음전파자가 서있을 때
컨베이어 벨트는 작동을 멈추게 된다.
주님이 오신다.
한 영혼의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는 분명히 다른 점이 있다.
물론 주변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 잘못되었다는 이야기는 분명히 아니다.
한명이라도 더 전도해야 한다.
그럼에도 20-30년이 지나면 아예 새로운 세대가 일어나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
이 일의 무한반복에서 벗어나려면 시계를 멈춰야 한다.
한 명을 전도하여 구원하더라도 그 영혼이 다른 선교지로 갈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내가 가던지 내가 보내던지 해야한다.
내가 직접 가든지 나의 돈과 물질과 기도가 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