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상으로 보자면 이스마엘은 당연히 이삭에게 복종해야 합니다. 허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그것이 단순히 그 가족사에서만 일어난 특수한 일이 아님을 시사한다.
세상에 있는 교회는 항상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은혜를 율법과 상식으로 대적하려 한다. 또한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의 습관과 새사람의 본성이 대적하는 일이 항상 일어나고 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의 해결방식은 무엇인가? 바로 이스마엘을 내어 쫓으라는 것이다. 어쩌면 잔인하게 보이고 무정하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은 이스마엘과 이삭 모두를 위한 조치였다. 이삭에게 자라나서 이스마엘을 품어주라고 하거나 갈등을 인내하면서 한 집에 계속 살라고 한 것이 아니었다. 우리의 옛사람과 새사람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이러한 해결방식은 동일하게 적용된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권세를 가졌다. 동어반복을 하자면 사단 마귀는 그 ‘어떤’ 권세도 가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는 이스마엘과 하갈을 내쫓을 권리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추방을 당할만한 짓을 저질렀다.
나에게는 그 이름의 권세가 주어졌다. 따라서 나도 그 권세를 사용하여 나의 옛사람의 습성을 내어쫓는다. 같이 살거나 타협하거나 인내하는 것이 아니다. 적극적으로 권세를 사용하여 내어쫓는다. 아브라함이 한 것과 동일하게 ‘말’로 내어 쫓는다. 그렇게 할 때 다른 ‘모든’ ‘무권세’들은 나갈 수 밖에 없다.
아브라함의 적극적인 권세 행사는 악하다고 표현 할 수 없다. 그러했기에 이스마엘과 하갈을 더 이상 박해를 받아도 되지 않았고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혈통인 이삭이 보호받았다. 우리는 내 속에 있는 한 분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