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하신다.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씨를 뿌린다.
여기서 놀라운 점은 원래 정상적인 농부라면 씨는 절대로 길바닥에 돌밭에 가시밭에 뿌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헌데 이 씨 뿌리는 자는 미련한 건지 모르겠지만 모든 밭에다 씨를 뿌리기 시작한다. 씨가 남아도나 보다. 사실상 놀라운 은혜이다. 예수님은 씨를 뿌리신다. 모두에게 씨를 주신다. 예수님은 아신다. 누가 좋은 밭인지 아닌지 당연히 아신다. 예수님은 숙련된 농부이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무한한 씨를 모든 밭에 뿌려주신다. 그리고 그 모든 씨앗들은 확실하게 동일한 씨앗이다. 동일하게 100, 60, 3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들이다.
우린 놀라워한다. 어떻게 100배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지. 허나 하나님은 일관된 분이시다. 그의 창조세계에서는 그것이 흔한 일이다. 많은 생물들이 100배 혹은 그 이상의 번식을 한 세대 만에 한다. 식물들은 더욱 그러하다. 씨앗 하나에서 몇 백 개의 열매가 나온다. 그것이 하나님이 창조세계의 밝혀놓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의 계획이다.
100배의 열매는 신기한 것이 아니다. 100배의 열매는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고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는 것이다. 노력의 의한 산물이 아닌 창조적 원리이며 설계이다. 열매 맺는 삶 다른 말로 하면 번식(번성)하는 삶은 생득권이라는 것이다. 이 지구상의 그 어떤 개체도, 그 어떤 생명체도 자신과 동일한 수의 번식을 하는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수 없다. 하나님의 마음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100배의 결실. 그것은 하나님이 특별한 은혜를 주신 자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특별한 은혜를, 씨앗을 모두에게 주셨다. 허나 4가지 밭 중에 오직 좋은 밭만이 열매를 생산해냈다. 다른 말로 그 밭만이 그 씨앗의 원래속성을 반영했다. 좋은 밭은 당연히 개인에게 달린 것이다. ‘열매 맺으라’ 하신 것이 아니다. 좋은 밭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부드러운 마음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나의 말씀으로 나에게 개인적으로 또한 인격적으로 하신 말씀으로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복잡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만드신 세계와 동떨어진 것이 아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도 명확한 말씀이다. 말씀을 알기 위해서 따로 학위 할 필요한 이유도 없다. 우리가 말씀을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는 우리의 혼이 하나님의 세계가 아닌 세상에 너무 물들었기 때문이다. 사단마귀 지배 아래 있는 세상에는 100배의 결실이 없다. 세상에서는 추수하지 못할 곳에 씨를 뿌리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그 어떤 경우에도 100% 확실한 추수가 존재하지 않는다.
허나 자연세계에서는 얼마나 당연한 일인가? 이 자연세계는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원리와 마음을 나타낸다. 자연에서 많은 것들이 100배 이상의 결실을 맺는다. 자연에서는 확실한 추수가 보장되어 있다. 자연에서는 모든 것이 번식하며 번성한다. 자연에서는 식물의 씨앗은 추수하지 못할 곳에도 심겨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하고 명료하며 여지없이 이루어진다. 자연이 몇 천 년간 그 법칙과 축복에 따라 지금까지 존재하듯이 말이다.